격동의 이란 역사: 제국의 흥망성쇠
이란사 이해의 중요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란은 다양한 제국의 흥망을 경험하며 중동·서아시아 정세를 주도해 왔습니다. 특히 사산 제국의 영광과 멸망, 이슬람 정복 이후 사파비 왕조의 시아파 국교화, 근대 카자르·팔라비 왕조의 서구 열강 압박과 개혁,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이르는 역사는 오늘날 이란 사회와 정체성의 근간을 이룹니다. 이 시리즈 3회차에서는 각 시대별 주요 사건과 인물, 제도 변화를 중심으로 이란 역사의 흐름을 조망합니다.

1. 사산 제국(224–651년)의 흥망
1-1. 건국 배경과 통치 체제
아르다시르 1세가 224년 파르티아 제국의 마지막 왕 아르타바누스를 격파하며 사산 왕조를 세웠다. 사산 제국은 중앙집권화된 관료제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아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했으며, ‘에런샤흐르(이란 왕국)’라는 국호 아래 전성기에 레반트·인도·중앙아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1-2. 대(對)로마·돌궐 전쟁
사산 제국은 고대 후기 로마(동로마)와의 반복된 전쟁을 통해 국력을 소모했으며, 588년부터 629년까지 돌궐(투르크)과도 트란스옥시아나 쟁탈전을 벌였다. 제1차 전쟁(588–589)에서 사산이 승리했으나 제2차(627–629)에서는 돌궐·동로마 연합군에 패배하며 국경 안보에 큰 타격을 입었다.
1-3. 멸망과 이슬람 정복
7세기 초 비잔틴·사산 전쟁 후 양국이 약화된 틈을 타, 650년경 정통 칼리파국 아랍군이 크테시폰을 점령하고 651년 사산 제국을 완전 정복했다. 이는 중세 이슬람 세계의 확장과 동시에 페르시아 문화가 이슬람 문명 속에 융합·재창조되는 계기가 되었다.
2. 사파비 왕조(1501–1736년)와 시아파 국교화
2-1. 셀주크·몽골 지배기 종식 후 부흥
몽골 일 칸국 붕괴 이후 지역 세력이 분열된 가운데, 1501년 이스마일 1세가 사파비 왕조를 세워 이란 전역을 통일했다. 그는 조로아스터교 전통을 잇는 페르시아 정체성을 복원하면서도 이슬람 시아파를 국교로 선포해 종교적·정치적 통합을 시도했다.
2-2. 시아파 강화와 오스만과의 갈등
시아파 국교화는 이란 내 통일을 강화했으나 이웃 오스만 제국(수니파)과 종파 대립을 심화시켰다. 전·후기 전쟁을 거치며 국경이 고착화되었고, 사파비 왕조는 종파적 결속을 통해 중앙집권을 공고히 했다.
3. 카자르 왕조(1789–1925년)의 근대 압박과 개혁
3-1. 영·러시아 열강의 양면 압력
1794년 아가 모하마드 칸이 잔드 왕조를 무너뜨리고 카자르 왕조를 건국했다. 이후 파드 알리 샤·나스르 알딘 샤 통치기 이란은 영·러시아의 세력 다툼 무대가 되며, 굴리스탄(1813)·투르크만차이(1828) 조약을 통해 코카서스 영토를 상실했다.
3-2. 헌법 혁명과 근대화 시도
1906년 입헌혁명이 일어났고 의회가 설립되었으나, 칼리파 모함마드 알리 샤의 쿠데타와 러시아 개입으로 의회가 해산되며 정치적 혼란이 지속됐다. 이 과정은 1925년 레자 샤 팔라비의 등극으로 이어져 카자르 왕조가 종말을 맞았다.
4. 팔라비 왕조(1925–1979년)의 서구화와 백색혁명
4-1. 레자 샤의 근대화
레자 칸(레자 샤)은 1935년 ‘이란’ 국호를 재도입하고, 교육·법·여성권 신장 등 일련의 서구화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성직자 세력 배제, 과도한 조세로 농민층 반발을 낳았다.
4-2. 모사데크·백색혁명과 1953 쿠데타
1951년 총리 모하메드 모사데크가 석유 국유화를 단행했으나, 영국·미국 주도로 1953년 쿠데타가 발생해 실각했다. 이후 팔라비 정권은 친서방 정책을 강화하며 독재를 심화했다.
5. 1979년 이슬람 혁명: 군주제 종말과 이슬람공화국 수립
5-1. 혁명의 배경
1970년대 이란은 급격한 근대화와 석유 호황에도 불구하고 정치·경제 불평등, 서구화 반발, 호메이니 지도 하의 종교운동이 결합해 반정부 정서를 키웠다.
5-2. 혁명 전개와 체제 전환
1978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확산되었고, 1979년 팔라비 국왕은 퇴위했다. 이후 공화국 헌법이 채택되고 종교 지도자가 국가지도자로 군림하는 신정 체제가 탄생했다.
이란사의 현대적 의의
이란의 역사는 고대 사산 제국의 중앙집권과 문화적 발전, 중세 시아파 종교국교, 근대 서구 열강과의 갈등 및 개혁, 혁명적 체제전환을 거치며 오늘날 복합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이란의 정치·사회·문화 담론에 지속적 영향을 미치며, 중동·세계정치 분석에 필수적 관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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