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 여름의 문턱에서 꼭 알아야 할 체온 관리의 기술
오늘 아침 창문을 열었더니 어제와는 다른 공기가 느껴졌다. 살랑이는 바람에는 더 이상 쌀쌀함이 없고, 대신 미세한 습기와 따스함이 섞여 있었다. 그렇다. 어느새 우리는 '입하(立夏)'를 맞이했다. 24절기 중 일곱 번째, 여름이 시작된다는 의미의 입하는 태양의 황경(黃經)이 45도에 이르렀을 때, 즉 양력으로는 보통 5월 5일~7일 사이에 찾아온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입하를 기점으로 생활 방식을 서서히 바꿔왔다.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식생활도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겨울의 무거움을 벗고 여름의 가벼움을 준비하는 시간인 셈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이 시기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특히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고 낮에는 더운 일교차가 크게 나타나는 요즘, 체온 관리에 실패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입하 시기, 왜 체온 관리가 중요할까?
인체의 적정 체온은 36.5℃ 내외. 하지만 이 온도는 24시간 내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아침에는 낮고 저녁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일중변동(circadian rhythm)을 보인다. 또한 계절에 따라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데,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입하 시기에는 이러한 변동 폭이 더 커질 수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김성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일교차가 10℃ 이상 나는 날이 3일 이상 지속되면 면역력이 평소보다 15~20% 가량 저하된다고 한다. 입하 즈음의 일교차는 종종 이보다 더 큰 경우가 많다. 체온 조절 시스템에 혼란이 오면 면역력이 저하되고, 그 결과 각종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입하 이후에는 '열대야'가 시작되기도 한다. 열대야란 밤 최저기온이 25℃ 이상인 날을 말하는데, 이런 날이 계속되면 숙면을 취하기 어려워진다. 수면 부족은 또 다시 면역력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체온과 건강의 밀접한 관계
체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우리 몸의 생명 활동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다. 사람의 체온이 1℃만 내려가도 면역력은 30%나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반대로 체온이 정상보다 높아지면 신체는 열을 내보내기 위해 혈관을 확장시키고 땀을 배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심혈관계에 부담이 가중된다.
일본의 면역학자 이시하라 유미 박사는 그의 저서 '체온 1도의 비밀'에서 "현대인의 평균 체온은 100년 전보다 약 0.5~0.7도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실내 온도 조절이 쉬워지고 육체노동이 줄어든 생활 방식의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체온이 낮아진 결과 면역력도 함께 저하되어 각종 질환에 취약해졌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입하 시기에는 이러한 체온 관리가 더욱 까다로워진다. 아침에는 서늘해서 두꺼운 옷을 입었다가 낮에는 더워서 땀이 나고, 저녁에는 다시 쌀쌀해지는 날씨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입하 시기 체온 관리를 위한 실천 팁
1. 레이어드 의복 활용하기
입하 시기에는 얇은 옷을 여러 겹 겹쳐 입는 '레이어드' 스타일이 효과적이다. 아침에는 여러 겹을 입고, 날이 더워지면 한 겹씩 벗어 체온을 조절할 수 있다. 특히 통풍이 잘 되는 면, 마와 같은 천연 소재를 선택하면 좋다.
목도리나 스카프도 유용한 아이템이다. 날씨가 쌀쌀할 때는 목을 감싸고, 더워지면 어깨에 둘러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작은 소품이지만 체온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
2. 체온을 높이는 식습관 유지하기
입하 이후에도 아침저녁으로는 여전히 서늘할 수 있다. 이럴 때는 따뜻한 음식으로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생강차, 계피차 같은 따뜻한 차나 데워 먹는 과일도 좋은 선택이다.
특히 단백질은 체온 유지에 도움이 되는 영양소다. 육류, 생선, 콩류 등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을 적절히 섭취하면 기초대사량이 증가해 체온 상승에 도움이 된다. 단, 찬 음식이나 얼음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3. 적절한 운동으로 기초대사량 높이기
규칙적인 운동은 기초대사량을 높여 체온 유지에 도움을 준다. 입하 시기에는 아침이나 저녁 시간대에 가볍게 걷기, 스트레칭, 요가 등의 운동이 적합하다. 낮 시간에 야외 활동을 할 때는 자외선 차단과 체온 상승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입하 이후에는 실내와 실외의 온도 차이가 커질 수 있으므로,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에 노출될 때는 몸을 미리 준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지 않도록 주의하고, 실내외 이동 시 잠시 적응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4. 숙면을 위한 실내 온도 조절
입하 이후에 시작될 수 있는 열대야에 대비해, 숙면을 위한 실내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면 전문가들은 수면에 가장 적합한 실내 온도로 18~22℃를 권장한다. 필요하다면 선풍기나 에어컨을 사용하되, 직접적인 바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자기 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숙면에 도움이 된다. 다만, 너무 뜨거운 물은 오히려 체온을 높여 수면을 방해할 수 있으니 미지근한 물이 적당하다.
5. 수분 섭취에 신경 쓰기
입하 이후에는 기온이 높아지면서 땀으로 인한 수분 손실이 증가한다. 체내 수분이 부족하면 체온 조절 기능이 저하될 수 있으므로, 규칙적인 수분 섭취가 중요하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마시기보다는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이 좋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의 연구에 따르면, 성인은 하루에 약 2리터의 물을 섭취하는 것이 권장된다. 하지만 입하 이후 더워지는 날씨에는 이보다 더 많은 양이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야외 활동이 많거나 운동을 할 때는 더 많은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사람들
체온 관리는 모든 사람에게 중요하지만, 특히 노인, 어린이, 만성질환자는 더욱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노인은 체온 조절 기능이 약해져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속도가 느리고, 어린이는 아직 체온 조절 시스템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뇨병,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자도 체온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이런 분들은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체온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규칙적인 실내 온도 유지, 적절한 의복 선택, 충분한 수분 섭취 등 기본적인 관리 방법을 철저히 실천하는 것이 좋다.
입하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
우리 조상들은 24절기에 맞춰 생활 리듬을 조절해왔다. 입하에는 보리밥을 먹고, 더위를 이기기 위한 보양식을 준비했다. 또한 햇볕을 피하기 위한 차양 도구를 마련하고, 여름철 의복으로 갈아입었다.
현대에는 냉난방 시설의 발달로 계절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자연의 리듬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인공적인 환경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체온 조절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
입하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맞게 생활 습관을 조절하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아 기상 정보를 확인하고, 스마트 의류나 체온 모니터링 장치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맺음말: 체온 관리는 건강 관리의 첫걸음
입하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이 시기에 체온 관리에 실패하면 여름 내내 건강 문제로 고생할 수 있다. 반대로 이 시기에 체온 관리 습관을 잘 형성해두면 무더위가 찾아와도 건강하게 여름을 보낼 수 있다.
체온 관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일의 작은 습관들이 모여 우리 몸의 건강을 지켜준다. 의복, 식습관, 운동, 수면 환경 등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에서 체온 관리를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입하가 지나고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와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의 변화에 귀 기울이고, 그에 맞춰 생활 리듬을 조절하는 지혜. 그것이 바로 입하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입하, 체온 관리를 통해 건강한 여름을 준비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