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 에르되시: 집 없이 떠도는 천재 수학자
폴 에르되시(Paul Erdős, 1913~1996)는 20세기 가장 많은 논문을 발표한 수학자 중 한 명이자, 역사상 가장 독특한 생활 방식을 가진 수학자로 꼽힙니다.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인 그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평생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수학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 "나의 뇌는 열려있다(My brain is open)": 에르되시는 집이나 직업, 재산 같은 세속적인 것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동료 수학자들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고, 도착하면 "나의 뇌는 열려있다"고 말하며 곧바로 수학 문제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커피(그는 커피를 "수학자가 정리를 커피로 바꾸는 기계"라고 불렀습니다), 암페타민(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복용), 그리고 수학 문제를 풀 동료뿐이었습니다.
- 에르되시 수(Erdős Number): 에르되시와 얼마나 가까운 공동 연구 관계를 맺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에르되시 본인의 에르되시 수는 0, 에르되시와 직접 공동 논문을 쓴 사람은 1, 에르되시 수 1인 사람과 공동 논문을 쓴 사람은 2가 됩니다. 이는 수학계에서 일종의 명예로운 지표로 여겨지며, 에르되시의 방대한 학문적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 아이들을 향한 애정: 그는 아이들을 매우 좋아했으며, 어린아이들을 "엡실론(epsilon, 수학에서 매우 작은 양을 나타내는 기호)"이라고 불렀습니다. 강연료나 상금으로 받은 돈의 상당 부분을 어린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이나 수학 경시대회 상금으로 기부했습니다.
- 독특한 어휘: 에르되시는 자신만의 독특한 어휘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신(God)'을 'SF(Supreme Fascist, 최고의 파시스트)'라고 불렀는데, 이는 신이 일부러 수학적 진리를 숨기거나 수학자들을 괴롭힌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보스(bosses)', 남자는 '노예(slaves)', 술은 '독(poison)', 음악은 '소음(noise)', 미국은 '샘랜드(Samland)', 소련은 '조랜드(Joeland)'라고 불렀습니다.
에르되시의 삶은 극도로 단순했지만, 수학에 대한 그의 열정과 헌신은 수많은 동료와 후배 수학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쿠르트 괴델: 불완전성 정리와 편집증
쿠르트 괴델(Kurt Gödel, 1906~1978)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 중 한 명으로, 수학의 기초를 뒤흔든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s)를 증명한 인물입니다. 그의 정리는 "무모순적인 공리계라 할지라도 참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항상 존재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수학의 완전성에 대한 믿음을 깨뜨렸습니다.
- 극도의 내향성과 편집증: 괴델은 극도로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특히 말년에는 건강 염려증과 편집증이 심해져, 다른 사람이 독을 넣었을까 봐 아내가 미리 맛을 보지 않은 음식은 절대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아내가 병으로 입원하자 그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해 아사(餓死)에 이르게 됩니다.
- 아인슈타인과의 우정: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시절, 괴델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두 천재는 매일 함께 산책하며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말년에 "나는 단지 괴델과 함께 산책할 특권을 누리기 위해 연구소에 간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 미국 시민권 인터뷰 일화: 괴델이 미국 시민권을 신청할 때, 그는 미국 헌법을 너무나도 철저히 연구한 나머지 헌법 내의 논리적 모순(합법적으로 독재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민권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하려 하자, 동행했던 아인슈타인과 다른 친구들이 황급히 그를 말렸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괴델의 삶은 그의 심오한 정리만큼이나 복잡하고 비극적이었습니다. 그의 업적은 현대 수학과 철학, 컴퓨터 과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리니바사 라마누잔: 신의 계시를 받은 천재
스리니바사 라마누잔(Srinivasa Ramanujan, 1887~1920)은 인도 출신의 독학한 천재 수학자로, 정수론, 무한급수, 연분수 등에서 놀라운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는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처럼 수많은 수학 공식과 정리를 발견했습니다.
- "나에게 방정식은 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다": 라마누잔은 자신이 믿는 여신 나마기리(Namagiri)가 꿈속에서 수학 공식을 보여준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의 수학은 직관과 영감에 크게 의존했으며, 종종 증명 과정 없이 결과만을 제시하여 당대의 수학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 하디와의 만남: 라마누잔은 자신의 연구 노트를 영국의 저명한 수학자 **G. H. 하디(G. H. Hardy)**에게 보냈고,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하디는 라마누잔을 영국 케임브리지로 초청했습니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수학적 스타일을 가진 두 사람의 협력은 수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중 하나로 꼽힙니다.
- 택시 번호 1729: 하디가 병문안을 갔을 때, 자신이 타고 온 택시 번호가 1729라는 평범한 숫자였다고 말하자, 병상에 있던 라마누잔은 즉시 "아닙니다. 그 숫자는 매우 흥미로운 수입니다. 그것은 두 세제곱수의 합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가장 작은 수입니다 (1³ + 12³ = 1729, 9³ + 10³ = 1729)."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는 그의 비범한 수 감각을 보여줍니다. 이 숫자는 이후 '하디-라마누잔 수' 또는 '택시캡 수(taxicab number)'로 불리게 됩니다.
라마누잔은 32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노트 속의 수많은 정리와 공식들은 오늘날까지도 수학자들에게 연구 과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그로텐디크: 수학계를 떠난 은둔의 천재
알렉산더 그로텐디크(Alexander Grothendieck, 1928~2014)는 20세기 대수기하학과 범주론 분야에서 혁명적인 업적을 남긴 수학자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연구는 매우 추상적이고 일반적이어서 현대 수학의 많은 부분을 재정립했습니다.
- 수학계를 향한 환멸과 은둔: 1966년 필즈상을 수상했지만, 그는 점점 더 수학계의 경쟁적이고 관료적인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연구가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결국 1970년대 초, 그는 돌연 학계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외딴 시골 마을에서 거의 완전한 은둔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방대한 미발표 원고: 은둔 생활 중에도 그는 방대한 양의 수학적, 철학적 사색을 담은 글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사후 발견된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들은 여전히 정리되고 연구되고 있습니다.
- 평화주의와 환경운동: 그로텐디크는 강력한 평화주의자이자 환경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수학 연구를 그만둔 이후 생태 공동체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로텐디크의 삶은 순수한 지적 탐구와 현실 세계의 가치 사이에서 고뇌했던 한 천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괴짜 수학자들의 공통점: 몰입과 열정
오늘 소개한 수학자들의 이야기는 각기 다르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극도의 몰입: 그들은 자신이 탐구하는 수학 문제에 극도로 몰입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주변 환경이나 일상적인 일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 수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 명예나 부보다는 수학적 진리 탐구 자체에서 기쁨을 찾았습니다.
- 기존의 틀을 깨는 독창성: 그들의 사고방식은 종종 기존의 통념을 뛰어넘는 독창성을 보여주었으며, 이는 그들의 삶의 방식에도 반영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위대한 수학자가 괴짜였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천재성과 인간적인 약점,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이 어떻게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치며: 인간적인 매력의 수학자들
오늘은 수학이라는 엄밀한 학문 뒤에 숨겨진, 위대한 수학자들의 인간적이고 때로는 기이한 면모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폴 에르되시의 방랑벽, 괴델의 편집증, 라마누잔의 신비로운 영감, 그로텐디크의 은둔 생활 등은 그들의 천재성과 함께 수학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수학이 단순한 공식과 정리의 집합이 아니라, 열정과 고뇌, 그리고 인간적인 드라마가 담긴 살아있는 학문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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