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역사 : 위조화폐의 암흑사 – 화폐 보안 기술의 발전
위조화폐는 물물교환 시절부터 현대 전자결제까지 화폐 신뢰성을 위협해 왔습니다. 동전이든 지폐든 가치가 부여된 매체가 위조될 때마다 시장 혼란과 경제 손실이 불가피했습니다. 이에 대응해 각국은 다양한 보안 기술을 개발해 위조 범죄를 억제하고 화폐 가치를 보호해왔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대표적인 위조 사건과 이를 막기 위한 화폐 보안 기술의 발전 과정을 살펴봅니다.
1. 고대와 중세의 위조화폐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은화를 깎거나 문질러 금속을 탈취하는 방법이 횡행했습니다. ‘이중욕구 불일치’를 이용한 물물교환과 달리 은화는 직접 금속 함량을 재는 형태였으므로, 절단(Clipping)·마모(Sweating)로 금속을 빼내 이익을 취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한국의 경우 1946년 서울 정판사 인쇄소에서 조선공산당이 대규모 위조지폐를 제조하려다 적발된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 발생했으며, 조폐 시설의 존재를 파악한 조직적 범죄였음이 드러났습니다.
스페인 식민지 시대에는 은괴를 덩어리 형태로 주조한 ‘코브(Cob)’ 주화를 단순 타격 방식으로 찍어내었는데, 불규칙한 주화 형태와 두꺼운 은분 두께를 모방한 위조품이 빈번히 유통되었습니다.
2. 대규모 위조 계획과 충격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독일은 Operation Bernhard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위조 영국 파운드를 생산, 유럽 전역에 풀어 경제를 교란하려 했습니다. 매월 약 100만 장의 위조지폐를 찍어냈고, 이 중 일부는 터키 스파이를 비롯한 정보원·무기 구매에 사용되었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최근까지는 북한이 ‘슈퍼노트(supernote)’라 불리는 거의 구분 불가능한 100달러 위조 지폐를 생산·유통시켜 달러 패권에 도전해 왔습니다. KEB 하나은행은 2006년 제작된 100달러짜리 신형 슈퍼노트를 처음 발견, “국가 차원 조직만이 가능한 기술”이라 결론지었습니다.
3. 초기 화폐 보안 기술
위조화폐에 맞서기 위해 유럽과 중국에서는 이미 중세부터 워터마크(종이띠물)를 활용해 지폐 위조를 억제했습니다. 13세기 유럽 제지업에서 시작된 워터마크는 원지에 얇은 실루엣을 삽입해 빛에 비추면 보이도록 한 기술로, 위조 종이 제작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동전에서는 가장 단순한 보안 수단으로 문양·초상화를 활용했습니다. 국가별 엠블럼과 지배자의 초상은 개별 주화 판에 새겨진 복잡한 조각으로, 모방이 쉽지 않았습니다.

4. 현대적 보안 기술의 혁신
20세기 중반부터 금속선(thread), 홀로그램(hologram), 미세인쇄(microprinting) 등 다층 보안 기술이 등장하며 화폐 위조를 효과적으로 억제했습니다.
- 1940년 영국은 파운드화에 최초의 금속 보안선을 삽입, 위조를 막았습니다.
- 2004년 G10 중앙은행들은 디지털 이미징 툴로 화폐 이미지를 캡처하지 못하도록 하는 Counterfeit Deterrence System을 공동 개발했습니다.
- 1988년 오스트리아 500실링 지폐에 Kinegram® 홀로그램이 최초 적용되었고, 같은 해 호주 10달러 기념지폐에는 Catpix™ 홀로그램이 윈도우에 삽입되었습니다.
- 마이크로인쇄와 형광·UV 잉크, 고급 위조용 종이 섬유(fiber) 식별 기술은 육안 검증과 기계 판독 모두 가능하도록 고안되었습니다.
이들 기술은 서로 결합되어 제1수준(일반인), 제2수준(장치), 제3수준(감정인)용 보안 기능을 다계층으로 제공합니다.
5.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보안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반의 제품 인증, 홀로그램과 동형암호 기술 결합 등 디지털 영역으로 보안 기술이 확장 중입니다. 분산원장에 화폐 이동 기록을 기록하고, 스마트 안경·스마트폰 앱으로 홀로그램 특징을 실시간 검증하는 사례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결론
위조화폐의 역사는 곧 화폐 신뢰성을 지키기 위한 기술 혁신의 역사였습니다. 고대 절단·마모 방식에서부터 나치·북한의 대규모 위조 음모, 그리고 워터마크·보안선·홀로그램·디지털 보안까지, 화폐 보안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블록체인 등 새로운 패러다임이 또 한 번 화폐 보안의 변곡점을 마련할 것입니다. 위조의 암흑사를 뚫고 화폐 가치를 지키기 위한 다음 보안 기술은 무엇일지 주목됩니다.
'역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돈의 역사 : 중앙은행의 탄생과 진화 – 화폐 권력의 중심 (22) | 2025.07.07 |
|---|---|
| 소서(小暑): 작은 더위가 시작되는 절기 (43) | 2025.07.07 |
| 돈의 역사 : 브레튼우즈 체제와 달러 패권 – 새로운 국제통화질서 (20) | 2025.07.02 |
| 돈의 역사 : 대공항과 화폐 위기 – 금본위제의 몰락 (22) | 2025.07.01 |
| 돈의 역사 : 금본위제의 황금시대 – 화폐 안정성의 상징 (18) | 2025.06.30 |